푸른 빛을 품은 청동기를 쓰던 시대
청동기 시대를 알아보자
청동기 시대는 돌을 이용한 석기 대신 청동기가 주요한 도구로 사용되는 시대를 뜻하며, 이후 철기를 사용한 철기 시대로 연결됩니다.
푸른 빛의 청동을 만들기 위해서는 구리와 주석이 필요하며, 이런 광물 자원의 확보와 불을 이용한 야금법이 주요한 제작 수단입니다.
청동기의 등장으로 인류는 석기 시대보다 농업 생산의 효율을 더욱 향상시켰고, 군사적 우위를 확보하였으며, 사회의 비약적인
발전과 더불어 직업의 분화, 문화 수준의 향상이 일어났습니다. 선사 시대의 세 가지 시대 중 하나이며 세계의 몇몇 지역에서는
신석기시대 이후 도달하게 되는 시대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시대 구분은 유럽사를 중심으로 제창되었고, 중동, 인도, 중국에도
적용시키는 것이 가능하였습니다. 그러나 일부 지역에는 이러한 시대 구분이 맞지 않는 경우도 있는데,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대부분 지역은 신석기 시대에서 곧바로 철기 시대로 이동합니다. 한반도의 경우 철동기 시대를 도기를 중심으로 하여
민무늬토기 시대로 구분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비파형 동검, 다뉴세문경 등 고도의 청동가공기술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일본은 석기를 사용하는 지역에 벌써 철기의 이용이 보급되어 있는 이웃 지역으로부터 청동기와 철기 모두가 전해지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가끔 이 시대는 비형식적으로 "영웅의 시대"라고 불리기도 하는데, 이는 몇몇 고전 그리스 문화의
일리아스를 포함하는 신화적인 이야기가 청동 시대에 배경을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남아있는 청동 유물들은 도구 또는 무기이나 가끔 종교적인 예식에 쓰이는 물건들이 발견되기도 합니다.
청동기의 기원에 대해
청동기의 기원은 근대 고고학의 논쟁이 분분한 문제 중의 하나입니다. 이를 살펴보면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한 곳에서 발생한 후
여러 곳에서 전파되었다는 유일기원론과, 지역별로 서로 다른 곳에서 다발적으로 출현하였다는 다원설, 앞은 두 설을 절충하여
한 중심지에서 발생한 후 각지에 2차 중심지를 형성하여 발달하다가 다시 파급되어 제3의 중심지를 만들어왔다는 설입니다.
유일기원설의 대상지는 황금과 동 등 광물이 풍부한 시베리아 예니세이 강 상류의 알타이 산맥 일대와 소아시아나 메소포타미아
일원 즉 오리엔트 일대라는 두 설이 있습니다. 오리엔트설에서는 청동기가 한 길은 도나우 강을 따라 유럽으로 북상하였고,
한 길은 남러시아를 거쳐 시베리아와 중국으로 전해졌다고 설명합니다.
지역별 청동기 시대
유럽, 아프리카 지역 - 청동기의 흔적은 일찍이 메소포타미아의 수메르, 나일강의 이집트 문명, 그리고 인더스 문명에서 발견됩니다.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에서는 기원전 3500년경부터 히타이트가 나타나는 기원전 1500년 전후까지 청동기 시대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유럽에서는 기원전 1800년 ~ 기원전 1600년경에 시작된 우네티체 문화가 청동기 시대에 해당합니다.
중앙아시아 지역 - 현재는 남부 러시아와 중앙 몽골을 관통하는 알타이 산맥은 세이마-트루비노 현상을 만든 문화적인 수수께끼의
기원점으로 밝혀졌습니다. 기원전 2000년경 급격한 기후변화가 생기고, 생태적, 경제적, 정치적인 변화가 빠르고, 대량의 이동으로 인해 서쪽으로는 유럽의 북동쪽, 동쪽으로는 남동 중국, 베트남, 타이 등으로 4000마일의 이동이 생겼으리라 짐작하고 있습니다.
동남아시아 지역 - 동손 청동북이라고 불리는 신석기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는 최초의 청동북은 베트남 홍강 삼각주와 중국 남부 지역
에서 발굴되었습니다. 이것은 베트남 동손 문화와 밀접한 유물들입니다. 태국의 반치앙에서도 기원전 2100년을 거슬러 올라가는
동기 유물이 발견되었습니다. 버마의 냥간에서도 석기 유물과 함께 동기가 발굴되었습니다. 이것은 기원전 1500년에서
기원전 500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유물들입니다.
한국의 청동기 시대를 알아보자
원래 청동기 시대는 석기 시대를 거치거나 지역에 따라서는 석기와 공존하는 금석 병용기 시대를 거친 뒤에 나타나는데, 한국에서는
뚜렷한 금석 병용기의 유물은 발굴되지 않았습니다. 청동기 유물은 석기와 함께 나오거나 순수하게 청동 유물만 나오기도 하며,
철기와 함께 출토되기도 합니다. 이는 보편적인 현상임에도 일제강점기의 연구는 철기가 나오는 김해 패총을 금속 병용기로
정의하였습니다.
한국 고유의 청동기
한국의 청동기로는 세형 동검, 잔무늬거울, 구리창 등이 있습니다. 특히 세형 동검은 만주, 한국, 일본의 규슈, 러시아의 연해주에
걸친 광대한 지역에서 출토되고 있습니다. 지난날 한국에서 나오는 간석기 돌검은 동검의 모방품이라고 보았지만, 지금은 그러한
해석이 타당성을 잃고 있습니다. 그와 경문청동기를 비롯하여 제사나 주술 등에 사용되었을 것이라고 추측되는 가지방울이나
잔무늬 거울 등이 출토되고 있습니다.
토기
청동기와 함께 출토되는 토기는 주로 민무늬토기입니다. 이 민무늬 토기는 무늬 토기와는 달리 일반적으로 구릉 지대에서
출토되고 있지만, 때때로 청동기와도 함께 오고 있습니다. 또 대전 괴정동의 예에서 보는 것처럼 검은간토기가 청동기와 함께
출토되기도 합니다. 특히 민무늬 토기는 무늬 토기와 달리 밑이 편편한 것이 특징인데, 반달 돌칼이 나오는 경우 그것은 예외 없이
민무늬 토기 유적이며, 무늬 토기와는 관계가 없습니다. 반달 돌칼은 중국 룽산 문화의 특징을 가져왔습니다. 이것으로 미루어 보면
농경이 있었다는 증거로 삼을 수 있지만, 그것이 전파된 경로는 아직까지 정확하지 않습니다.
무덤
청동기가 출토되고 있는 묘제, 곧 무덤에 대한 관습이나 제도의 예를 몇 가지 들어보면, 널무덤, 고인돌, 돌널무덤, 독무덤, 움무덤
등이 있습니다.
고인돌 - 한국의 고인돌도 지난날에는 남방식, 북방식으로 확연히 구별하였지만, 북에서도 남방식의 고인돌이 나타나고 있어서
정확한 개념으로 보기에는 어렵습니다. 양주군 사노리, 봉산군 어수구, 김해 무계리에서 청동 유물을 여러 얻고 있습니다.
이 외에도 대전시 괴정동과 전라남도 화순에서 청동제 유물이 나와 귀중한 학술적 가치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고인돌도 전파 경로가 불명인데, 중국의 동북지방에 많이 분포되고 있지만, 동북아시아에서는 만주, 한국과 일본의 구주 지방에집중적으로 퍼져 있습니다. 그러므로 한국의 고인돌이 자체 발생 문화인지, 대륙이나 해로로 들어온 것인지는 아직도 단언할 수없습니다. 하지만 최근 연구에 따르면 고인돌의 연대는 기원전 8세기 이전에 시작되어 기원전 3~2세기까지 존속한 것으로 보고되고 있습니다.
청동시 시대 경제 활동
청동기 시대의 경제활동은 어로나 수렵 및 채집과 같은 초보적 단계를 벗어나 최소한 식량을 자급자족하는 단계에 들어가 있습니다.
반달 돌칼의 존재는 농경의 가능성을 증명하고, 거대한 고인돌을 조영 할 수 있는 힘도 양곡의 충족 위에서만 가능한 일입니다.
그뿐만이 아니라 청동기라는 이기를 만든다는 것 자체가 벌써 신분제의 초기적 성립을 보여주기 때문에 자유자재의 양식 생산이
가능한 사회에서 청동기가 만들어졌던 것입니다. 청동기를 만들 수 있는 사회적 바탕이 곧 고대 국가를 세울 수 있는 힘과
조직의 근원이 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