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 예술의 시대, 르네상스 시대에 대해
르네상스
르네상스, 문예 부흥, 학예 부흥은 유럽 문명사에서 14세기부터 16세기 사이에 일어난 문화 혁신 운동을 말합니다. 과학 혁명의 토대가
만들어져 중세와 근세를 이어주는 시기로 불리기도 합니다. 여기서 문예부흥이란 구체적으로 14세기에 시작하여 16세기 말에 유럽
에서 일어난 문화, 예술 전반에 걸친 고대 그리스와 로마 문명의 재인식과 재수용을 의미합니다. 옛 그리스와 로마의 문학, 사상, 예술
을 본받아 인간 중심의 정신을 되살리려는 움직임을 보였습니다. 이 점에서 르네상스는 일종의 시대적 정신운동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역사적인 측면에서 유럽은 르네상스의 시작과 더불어 기나긴 중세시대의 막을 내렸고, 동시에 르네상스를 거쳐 근세시대로 접어들게
됩니다. 르네상스의 정신, 혹은 운동은 이탈리아에서 비롯되었고, 얼마안가서 알프스를 넘어 유렵의 다른 국가, 즉 프랑스, 네덜란드,
영국, 독일, 스페인 등지로 퍼져나갔습니다. 그러나 스칸디나비아반도의 나라들은 이 운동에 거의 영향을 입지 않았습니다. 16세기 초
이 운동의 인문주의자들이 종교 개혁의 원동력이 되어 교회 개혁과 학문적 방법에 영향을 주었습니다.
르네상스를 바라보는 다양한 관점
르네상스라는 말이 19세기에 만들어진 이후 르네상스 시기는 다양하게 해석되어왔습니다. 부르크하르트 시대에는 르네상스가
명백한 시대구분이라고 생각했지만 게르만계 학자들이 중세 재평가 작업을 하면서 르네상스의 특징이 사실은 중세에서도 발견
되고 있었다는 것을 밝혀냈습니다. 또 르네상스 시대에는 점성술이나 마술 등 비이성적, 비과학적인 태도가 여전히 많이 남아있었습니다. 즉 중세와 르네상스를 명확히 나누기는 어렵다는 말이 되기도 합니다. 르네상스가 근대의 시작인가 아닌가의 논쟁은 아직 계속
되고 있습니다.
전통적인 관점은 15세기 이탈리아의 르네상스가 중심이 되어 전 유렵으로 확산된 흐름이라고 보고있습니다. 구체적으로 언급하면
아랍의 지식을 흡수하고, 경험적인 태도를 가지며, 현세지향적이고, 인쇄술의 발달로 지식이 확산될 토양을 확보하고, 예술에서
새로운 기법과 실험을 시도하게 되는 등의 변화를 말합니다. 이 관점은 르네상스 시기에 유렵이 암흑기에서 벗어나 대항해시대로
상징되는 경제성장의 시기로 진입했다고 보는 것입니다. 이탈리아 르네상스는 종종 근대의 시작으로 간주되기도 합니다.
마르크스주의 역사가들은 르네상스를 미술, 문학, 철학 등이 변화된 유사혁명 정도로 보고 있습니다. 오직 극소수의 가진 자들
에게만 의미가 있었을 뿐 대부분 유럽 사람들에게는 여전히 중세였다는 관점입니다.
오늘날 많은 역사학자들은 르네상스가 실질적인 것이라기보다는 지적, 이념적 변화 정도로 보고있습니다. 더 나아가 중세의 부정적인 특징인 가난, 무지, 전쟁, 종교/정치적 박해 등은 마키아벨리와 종교전쟁, 마녀사냥의 시대인 16세기에 더 심해졌다고 보고 있습니다. 19세기에 르네상스에 대해 적었던 학자들은 르네상스 시기의 민중들이 황금시대에 살았던 것처럼 묘사하여 지금까지도 그런 이미지가 남아있지만 마냥 그렇지만은 않았습니다. 르네상스 시기의 작가, 화가 그리고 그들의 후원자들이 민중들의 고통과는 관계없이 자신들은 중세의 암흑기를 끝내고 새 시대를 열고 있다고 믿었다는 점은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르네상스의 역사
이탈리아 르네상스
14세기~16세기까지 이탈리아 도시들이 무역을 통해 경제력을 키워왔습니다. 피렌체, 베네치아, 피사, 밀라노 같은 도시에서는 이러한 경제력으로 자치권을 사들여, 영주나 교황의 간섭에서 벗어나 인간에 대한 관심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신도 인간처럼 표현하던 고대 그리스·로마 문화를 다시 부활시키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예술과 문학에 나타난 이러한 새로운 기운을 르네상스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특히 르네상스 미술은 이탈리아 피렌체를 중심으로 전개되었고, 로마와 베네치아에서 전성기를 맞은 후 유럽 전역에 전파되었습니다.
인문주의
이탈리아의 르네상스는 인문주의, 곧 신중심에서 사람 중심으로 생각이 바뀌는 지적 흐름과 이탈리아 중북부가 도시주 형태의 자치상태에 놓여있었다는 점과 관계가 있습니다. 당시 피렌체는 지중해 무역으로 번영하여 토스카나지방의 중심지였고 14세기경부터 교회, 이슬람 세계, 동로마 제국 등의 고전문화에 영향받게 되었다는 것이 일반적인 이해입니다.
건축
이탈리아에는 고대 유물이 많았습니다. 그로 인해 조각가, 건축가 등이 고대 로마의 것을 공부하는 것이 가능했습니다. 건축에서는
브루넬레스키가 르네상스를 시작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는 당시 건축에 애를 먹고 있었던 피렌체 대성당의 큰 돔을 올리는데 성공
하여 명성을 얻게 되었고, 이후 건축가 브라만테 등이 나타나 르네상스 건축을 이어나가게 됩니다.
회화
회화에서는 마사초가 그 서막을 열었습니다. 그의 자연주의적 태도는 이후 프란체스카, 베로키오 등의 원근법, 해부학 등으로 이어지게됩니다. 레온 바티스타 알베르티는 '인간은 모든 것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는 말로 유명한데, 그는 건축, 회화를 넘나드는 방대한 저술로 인문주의자의 한 전형이 되었습니다. 이후 미켈란젤로, 다빈치, 라파엘로 등의 박식가들이 뒤이어 회화, 건축, 조각 등에서 다방면의 재능을 드러내었습니다.
독일 르네상스
독일에서는 이탈리아와 가까운 바이에른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독일 르네상스는 르네상스적 요소와 후기 고딕적요소가 결합되어 있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그 이유는 다른 지역보다 독일에 르네상스적 요소가 늦게 도달했기 때문인데, 아담과 하와, 4명의 사도 등의
미술작품을 완성한 알브레히트 뒤러가 선두로 있습니다.
폴란드 르네상스
폴란드는 15세기와 16세기 사이 이탈리아의 화가, 상인, 사상가들이 폴란드에 들어오게 되면서, 크라쿠프를 중심으로 발달하게됩니다
지동설을 주장한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와 얀 코하노프스키 같은 시인들이 등장하면서, 르네상스 양식으로 지어진 중요한 기념물은
다른 많은 도시에서도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슈체친의 슬라브 왕자의 중세 성은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르네상스 양식으로 재건되었습니다.
네덜란드 르네상스
오늘날에 벨기에와 합쳐있던 네덜란드는 남유럽과 북유럽을 잇는 교통의 관로였습니다. 거의 이탈리아와 같은 시기에 르네상스가
일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우신예찬을 쓴 에라스무스와 같은 작가가 등장하고, 판 에이크 형제와 피터르 브뤼헐 더 아우더,
히에로니무스 보쉬 같은 화가들이 등장하게 됩니다.
르네상스의 종말
130년간 지속된 르네상스는 1530년경에 끝이 나게 됩니다. 그 이유로는 1492년 크리스토발코론이 포르투갈인들과 함께 인도로 가는
해로를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그 후, 북서부 유렵의 상인들이 무역상품을 리스본과 안트웨르펜틴을 통해 거래하는 것을 선호하게 되기도 하였고, 1517년 아우구스티노회의 수도사인 마르틴 루터가 종교 개혁을 단행했기 때문도 있습니다. 이로 인해 서유럽 교회는
로마 가톨릭교회와 개신교 교회로 분열되기 시작합니다. 교회의 분열은 그동안 납부금과 세금의 형태로 이탈리아를 풍요롭게 했던
돈줄의 고갈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유럽인의 아메리카 대륙 상륙과 종교개혁으로 결국 이탈리아는 상업적 무역자본과 자본, 두가지를
동시에 잃게 됩니다. 또 이탈리아는 그 당시 이탈리아 전쟁 등이 겹치면서 정치적으로 굉장히 혼란스러운 상태이기도 하였습니다.
이로 인해 르네상스는 점차 쇠퇴의 길을 걷게 되면서 종말을 맞이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