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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그리스 문명을 알아 보자

by 노란 오리 2023. 8. 29.

 

 

 

 

 

 

 

 

 

 

 

고대 그리스의 역사

고대 그리스는 그리스 역사 중 기원전 1100년경부터 기원전 146년 로마가 정복한 시대를 뜻합니다. 기원전 1100년경은 미노스 문명,

키클라데스 문명, 미케네 문명으로 특정지어지는 에게 문명 즉 그리스 청동기 시대가 끝나고 그리스 암흑기가 시작되던 때로, 

도리스인의 침입이 있었다고 보는 때입니다. 기원전 146년에는 코린토스 전쟁으로 고대 로마가 그리스를 정복한 때입니다. 

일반적으로 그리스 고전기를 고대 그리스의 대표적인 시대로 보고 있습니다.

 

고대 그리스 사람들은 동족 의식을 가지고 부분적으로 결합을 이루었지만, 폴리스를 중심으로 하는 독립성이 강하여 

통일된 국가를 형성하려는 움직임은 없었고 필요시에는 여러 폴리스들 간에 동맹을 맺는 형식으로 이어 나갔습니다.

이러한 체제는 당시 세계의 다른 여러 지역에서는 거대한 제국 또는 왕국이 형성되었던가는 다른 모습의 그리스만의

독특한 특징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특징은 헬레니즘 시대의 그리스 이전까지 유지되었습니다.

 

보통 고대 그리스는 서구 문명의 기틀을 다지고 서남아시아와 북아프리카 전역의 문화에 큰 영향을 준 풍부한 문화를 

남긴 것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그리스 문화는 로마 제국에도 큰 영향을 주었으며, 로마인들은 지중해 지역과 유럽에 

그리스 문화를 발전하여 퍼뜨렸습니다. 고대 그리스 문명은 언어, 정치, 교육 제도, 철학, 과학, 예술에 크나큰 업적을 남겼고,

이 지역들에서 후대에  큰 영향을 끼쳤는데, 특히 이슬람 황금시대와 서유럽 르네상스를 촉발시킨 원동력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또 18세기와 19세기 유럽과 아메리카에서 일어난 다양한 신고전주의 부활 운동에서도 영감을 주는 원천이 되었습니다.

 

 

 

 

고대 그리스 시대 구분

고대 그리스 시대는 도기 야식과 정치적 사건을 기준으로 네 시대로 세분되었습니다.

 

기원전 1100년경에서 750년경을 그리스 암흑기라고 하는데 이때는 도기에 기하학적 문양을 사용하던 시대였습니다.

 

기원전 750년경에서 480년경까지를 그리스 상고기라고 부르고 이 시기에는 예술가들이 경직되고 신성한 자세를 취하는

커다란 입상 조각 작품을 만들었는데, 이 작품에는 현실과는 동떨어지는 '상고기 미소'를 보이고 있습니다. 상고기의

종식 연대는 종종 아테나이의 마지막 참주 정권이 전복되고 아테나이 민주주의가 시작된 기원전 510년경을 잡기도 합니다.

 

기원전 500년경에서 323년까지를 그리스 고전기라고 부르고 있으며, 파르테논 신전처럼 모범이 된다고 평가받는 예술 양식이

보이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기원전 323년부터 146년까지 기간을 헬레니즘 시대의 그리스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이 시기에는 그리스의 문화와

패권이 중동까지 뻗어간 시대로, 이 시대의 처음과 끝은 각각 알렉산드로스의 죽음과 로마의 그리스 정복이 일어난 때를

보고 있습니다. 

 

 

 

 

 

 

 

 

 

 

 

 

 

 

 

 

 

 

 

 

고대 그리스 시대별 특징

그리스 청동기 시대 - 청동기 시대 중기부터 발칸반도에서 나중에 그리스인을 이루게 될 부족들이 몇 차례에 걸쳐 남쪽으로 

이주한 것으로 보입니다. 원시 그리스어는 이 시기 이주민들이 오기 직전에 쓰인 언어로, 기원전 3000년대 후반 또는 늦어도

기원전 17세기에 쓰인 것으로 보입니다. 원시 그리스의 청동기 문명은 보통 '헬라딕' 문명이라고 칭하며, 흔히 말하는

"고대 그리스" 시대의 이전 단계입니다. 소위 미케네 문명이 이 시기에 흥성하였으며,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알 수 없는 이유로 미케네 문명은 기원전 1150년 갑자기 몰락하였는데, 도시는 약탈당하고 인구가

크게 줄었으며, 청동기 시대의 붕괴는 그리스 본토에 침입한 마지막 그리스인 집단인 도리스인의 출현과 거의 같은 시기에

일어났습니다. 이렇게 두 사건이 인과적으로 연결된다는 확실한 증거는 없지만 점차 청동기 시대가 종식되면서 그리스는 

"암흑기"에 접어들게 됩니다.

 

그리스 암흑기 시대 - 청동기 시대 이후 기원전 1100년경부터 기원전 8세기까지 시대를 그리스 암흑기라고 하는데,

이 시기의 1차 문헌 사료는 전혀 남아있지 않고, 고고학 유적과 유물만 남아있습니다. 

헤로도토스의 역사나 파우사니아스의 '그리스 서술', 디오도로스 시켈리오테스의 역사집, 히에로니무스의 크로니콘 등

2차 3차 사료는 이 시기의 짤막한 연대기와 임금의 목록을 담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알려진 자료가 많지 않기 때문에

암흑기라고 일컫고 있습니다.

 

그리스 상고기 시대 - (폴리스의 발전)상고기 시대 때 도리스인이 남하하여 미케네 문명은 완전히 파괴되었고, 도리스인의 침략으로

일부 그리스 사람들은 에게해의 섬과 소아시아 방면으로 이주하였습니다. 그리스인들이 이주한 소아시아 해안지대와 인접한 섬들을

이오니아라고 하였는데, 미케네 문화의 유산을 지키고 있던 이오니아는 오리엔트 문화와도 접촉하기 쉬워서

폴리스도 소아시아의 서쪽 해안에서 먼저 성립하였습니다.

기원전 8세기에 그리스는 암흑시대에서 벗어나기 시작했고, 미케네의 선형 B 문자가 잊혀진 이래 문자가 없어 어려움을 

겪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는 페니키아 문자를 도입하고 이를 수정하여 그리스 문자를 완성시켰습니다. 이로 인해

기원전 9세기경부터 문자 기록이 등장하게 됩니다. 기원전 6세기에 아테나이, 스파르타, 코린토스, 테바이 등 여러

도시들이 지배적인 위치에 서게 되었습니다. 각 폴리스는 주변 농촌 지역과 소읍을 장악하였고, 아테나이와 코린토스는 주요

해운, 상업 강국으로 부상하게 됩니다.

 

(스파르타) 스파르타는 정복을 통해 성장하였습니다. 도리스인이 남하하였을 때, 원주민 가운데 스파르타의 지배를 받아들이고종속적인 지위를 감수한 자는 운신은 자유롭지만 시민권이 없는 페리오이코이가 되고 처음부터 예속신분이었거나 끝끝내저항한 자는 헤일로타이라는 노예신분이 되었습니다. 스파르타의 국제는 두 사람의 왕이 있었으나 실권은 없고 두 왕을 포함하여30명의 유명 가문 출신으로 구성되는 장로회가 국정의 중요 안건을 마련하지만 이는 20세 이상의 성년남자 시민전체로 구성되는민회의 승인을 받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국정운영의 실권은 집정관이 가졌는데, 이들은 또 왕을 포함한 여러 관직자들의 행동을 감시,스파르타 특유의 생활양식의 준수 여부를 감시하였습니다. 이러한 정치구조는 왕정과 귀족정치의 영향을 받은 것이지만, 성년 남자 전원이 분배지를 가진 동등한 시민으로서 중장보병의 의무를 지고 있었기 때문에 민주적인 성격도 있습니다. 또한 스파르타 시민에게는 개인적인 사생활이 없었고, 오직 훌륭한 전사가 되는 게 인생의 목적이었습니다. 일상용품의 생산과 상업도 페리오코이의 부담이었고, 화폐는 사용하기 불편하게 쇠로 되어있었으며 자급자족을 원칙으로 삼아 대외 무역은 가급적 억제하였습니다.

 

(아테네) 아테네의 귀족정치의 중심은 집정관과 아레이오파고스 회의였습니다. 집정관은 처음 군사, 종교, 민사의 3명이었으나,후에 9명으로 증가하고 임기가 끝나면 자동적으로 아레이오파고스 회의의 의원이 되었습니다. 아레이오파고스 회의는 부유한 명문출신의 귀족들로 구성되며 귀족 지배의 가장 핵심적인 기관이었습니다. 일반시민으로 구성되는민회가 있고, 집정관도 여기서 선출되었으나 실질적인 권한은 가지지 못했습니다.아테네의 직접 민주주의 정착 과정은 다음과 같습니다. 솔론은 재산 정도에 따라 첨정권을 부여했고, 그는 시민 계층을 재산 정도에 따라 500석 급, 기사급, 농민급, 노동자급 등 네 가지로 분류했는데 계층에 따라 맡을 수 있는 공직의 지위는 달랐습니다.노동자급은 공직에는 참여할 수 없었지만, 시민 의희에는 참여할 수 있었습니다. 클레이스테네스는 정치 참여 자격에서 재산 기준을 폐지했고, 독재자의 추방을 막는 도편추방제를 실시했습니다. 페리클레스는 시민 의회의 지위를 높이고, 투표에참여하는 계층을 확대함으로써 민회 중심의 직접 민주주의를 정착시켰습니다. 또한 관리를 추첨으로 선발하고 수당을 지급함으로써시민의 정치 권리 행사를 확대시키고, 가난한 시민도 정치에 참여할 수 있도록 적극적인 노력을 하였습니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하면, 철학은 세계의 근원을 신화가 아닌 방식으로 설명한 때부터 시작되었으며, "만물의 근원은 "이라고

설명한 탈레스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텔레스의 제자인 아낙시만드로스는 세계의 근원을 아페이론이라고 설명하였고,

아낙시메네스는 세계의 근원을 공기라고 설명하였습니다. 

마그나 그라이키아에서 나타난 엘레아 학파는 세계의 근원을 하나의 물질로 설명하는 것을 부정하고, 언어적 추론을 통하여

세계적 근원을 설명하였습니다. 엘레아 학파의 창시자인 파르메니데스는 존재는 하나이며, 부동이며, 존재는 비존재로부터

생성될 수 없으므로 생성은 있을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또한 불완전한 감각을 부정하고 존재는 오로지 이성으로만 인식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아테네에서는 민주주의가 발달하여 수사학이 발달하였으며, 이러한 수사학을 가르치는 교사인 소피스트들이 

활발하게 활동하였습니다. 대표적인 소피스트인 프로타고라스는 "인간은 만물의 척도"라며 진리의 상대주의를 주장하였습니다.

소크라테스는 이러한 상대주의에 맞서, 장인이 장인으로서의 훌륭함을 수행하려면 그 기능 또는 기술에 대해서 잘 알아야 하듯이,

인간으로서의 훌륭함, 즉 덕을 수행하려면 그것에 대해서 알아야 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소크라테스의 제자인 플라톤은 방대한 대화편을 통해 자신의 철학을 전개하였으며, 화이트헤드가 "서양 철학은 플라톤의 각주에

불과하다"고 할 만큼 이후의 서양 철학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쳤습니다. 플라톤은 동굴의 비유를 통해 감각으로 인식되는 세계는

이데아의 그림자이며, 이데아는 이성으로만 인식될 수 있다고 주장하였으며, 상기설을 통해 인간의 진리 인식은 선험적이라고 

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