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산 문화로도 불리는 요하 문명
홍산 문화 또는 발해 연안 문명은 현대 중화인민공화국 랴오닝성에 내몽고 허베이성에 존재했던 신석기시대의
고대 한국 문화입니다. 현재의 중화인민공화국 랴오닝 성 일대의 요동 지역을 기반으로 하고 있습니다.
홍산 문화의 큰 특징인 빗살무늬 토기는 한반도 전역에 발견되는 빗살무늬 토기와 같고 적성총이라는 특이한
문화 그리고 옥기는 한반도 강원도 고성군 패총에서 출토된 옥 귀걸이와 전남 여수 안도리 등에서 발견된
옥 장신구, 귀걸이와 유사점이 있어 고조선 등 한반도 초기 역사와 관련이 있을 것으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홍산문화는 1908년 일본의 인류학자 도리이 류조에 의해 처음 발견되었는데, 연대는
기원전 4700년 ~ 기원전 2900년 경으로 지금까지 퉁화시, 츠펑, 발견 당, 링위안, 젠핑, 차오양 등 500여 곳의
유적을 찾아내어, 발견 지역은 만주 지역 퉁화시, 옌산 산맥의 북쪽 랴오허 지류의 랴오허 상류 부근에 널리
퍼져 있습니다. 홍산 문화는 옥 문명으로 유명하여 홍산 문명이라고도 불리고 있습니다.
중국은 1980년대부터 본격적인 발굴을 하면서 싱룽와 문화, 홍산 문화, 자오바오거우 문화, 신러 문화 등으로
이어지는 요하 일대의 신석기문화를 문화의 단계를 넘어선 새로운 문명으로 간주하여 '랴오허 문명'으로
명명하여 부르고 있습니다.
연대 인상과 평가
중국에서는 요하 유역에서 새로운 유적들이 계속 발견됨에 따라 도리이 류조의 처음 발견 당시의 추정보다
연대가 훨씬 오래된 기원전 8000년까지 인상되었다면서, 광의의 홍산 문화에 기원전 8000년경의 신러 문화까지를
포함시켜 '요하 문명'으로 간주하여 홍산 문화가 황하문명의 원류라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으며, 중국 학자
량쓰용은 중국어족과는 다른 랴오허 지역의 사람들이 남하하여 현 쓰촨 성 북부의 중국티베트어족을 지배하고
황하문명을 만들었다고 주장하지만 고대 한족과는 전혀 별개의 문화로 밝혀지고 있는 추세입니다.
문명의 위치
내몽골자치구 츠펑 시에는 홍산이 있습니다. 만주 지역에서 시작된 신락 문명이 이곳으로 퍼져 나가면서 이곳을
중심으로 한 광범위한 지역에서 옥기가 발견되어 홍산옥기라고 하였고 중국에서 보기에 홍산 뒤쪽에서
발견되었기에 내몽고 자치구의 츠펑 시에 있는 홍산 호우 유적이라고 이름이 붙여졌습니다. 현재의 내몽골 자치구
동남부, 랴오닝성 서부와 중부, 동부에 해당되고 있습니다.
홍산 문명의 역사
현재의 명칭은 내몽고 자치구의 츠펑 시에 있는 홍산 호우 유적에서 유래하였습니다. 홍산 문화는 1906년까지
거슬러 올라가게 됩니다. 일본의 저명한 인류학자 겸 고고학자인 도리이 류조가 적봉 일대 지표조사를 하던 중,
우연찮게 많은 신석기 유적과 돌로 쌓은 묘 등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것이 후대 세계를 놀라게 한 홍산 문화
적석총 유적이었습니다. 동북지방과 만주, 한반도 일대에서만 발견되는 무덤 형태였습니다. 또한 빗살무늬
토기도 발견되었습니다.
하지만 당대에서는 큰 관심을 끌지 못했는데, 이후 20세기 초 중국에 온 프랑스 예수회 신부 에밀 리상도
22곳의 신석기 유적을 발견했지만, 류조와 마찬가지로 간단한 글만 남기고 갔습니다. 그러나 1920년대
미국 하버드대에서 유학 중이던 고고학도 량쓰용은 이 글을 놓치지 않고 읽어보며 관심을 가지게 됩니다.
1930년 귀국한 량쓰용은 그해 겨울에 적봉으로 향했습니다. 중국 중앙연구원 고고분과 담당자로서
내몽골 임서 일대와 헤이룽장 등 동북지방에서 잇따른 신석기 유적 발견을 바탕으로 본격적으로
발굴작업을 계획하게 됩니다. 하지만 정세 불안과 건강 악화로 인해 발굴이 지연되게 되고, 1934년
'열하고고보고'로 학계에 첫 보고를 하는 데 만족해야 했습니다. 보고서에는 "동북 4성 발굴작업을
완성하지 못했지만 절대 잊어서는 안 된다."라고 썼습니다.
실제적인 발굴은 일본 고고학의 아버지인 하마다 고사쿠로 당시의 대규모 발굴단을 끌고 와 발굴을
진행하였습니다. 이렇게 1906년 일본의 고고학자 도리이 류조에 의해 발견되어, 1935년 하마다코사쿠나 미즈노 세이치 등에 의해 대규모의 조사가 이루어졌습니다. 전후 각지에서 발굴이잇달았으며, 채도와 세석기의 특징을 가진 이 문화는 1954년 홍산후를 기념하여홍산 문화라고 명명되었습니다.
생활상
홍산 문화에서는 수렵, 채집 중심으로 후기에 기초적인 농작이 보이는 것을 통해 신석기시대의특징을 보이고 있습니다. 가축을 사육한 축산도 발달하고 있어 돼지나 양이 길러졌습니다. 한편,수렵이나 채집 등으로 야생 동물을 사냥하거나 야생초를 채집하기도 했습니다.
유적 유물
이들이 만든 옥들은 최초로 용 모양을 하고 있으며 용 모양의 비취 등의 구슬을 근거로 용의 기원은
황화 문명이 아닌 홍산 문명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즉 현재 중국에 연결되는 용 관련 문화나
종교의 존재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홍산 문화의 주된 유적은 만주 심양 지역의 랴오허 상류의 지류인 황수 및 투허 유역에 퍼져 있습니다.
발견된 석기는 타제석기, 마제석기, 세석기 등으로 그 대부분은 신석기시대의 농기구이며, 돌보습,
돌쟁기, 돌호미 등의 종류가 많습니다.
홍산 문화의 도기는 진흙 홍도 및 협사회도 두 종류로 나눌 수 있습니다. 빗살무늬 토기가 발견되고
진흙으로 만들어 붓으로 그림을 그린 채도는 취사나 식사 등에 사용되고, 문양이 새겨진 협사회도는
음식을 담는 곳에 사용되었습니다. 다른 도기에서는 흉상이 각지에서 출토되고 있습니다.
홍산 문화에서는 양사오 문화와 같은 채도 문화는 발달하지 않았지만, 룽산 문화의 흑도와 같은
세련된 조형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또, 후기 유적에서는 청동으로 만든 환도도 발견되고 있습니다.
홍산 문화의 분묘에서는 비취 등의 석재로 동물 등의 형태로 조각한 장식품이 많이 출토되었습니다.
돼지, 호랑이, 새 외에도 용을 새긴 것도 발견되고 있습니다. 높은 공예의 수준이 홍산 문화의 큰
특징이 되고 있습니다. 저룡 또는 옥저룡이나 옥웅룡 등으로 불리는 홍산 문화의 옥용의 조형은
단순하며, 용이 원형으로 된 것이 많지만, 후기로 가면서 반용, 문용 등의 구별이 분명해지고
있습니다. 고고학자 중에는 홍산 문화가 이후 중국에서 시작된 용 숭배의 근원이라는 주장이 있습니다.
주로 저룡이나 옥저룡이라고 명명하는 형태의 용을 본뜻 모양을 중국에서 시작된 용 숭배의 근원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홍산문화에서 적석총과 옥기가 발견되는 것을 근거로 하여, 홍산문화가 적석총이
다수 발견되는 고조선, 고구려, 백제, 신라 등의 문화의 연원이라는 견해가 나오면서
대한민국과 중국에서 이 지역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뉘우허량 유적
1983년에 랴오닝성 링위안 시에서 젠핑현에 걸친 넓은 범위에서 발견된 뉘우허량 유적에서는
기존의 홍산 문화와 다른 거대한 제사시설이 발견되었습니다. 유적은 5km 제곱의 넓은 범위에
돌을 쌓아 만들어진 분묘나 제단이 정연하게 분포하고 있습니다. 또한 돌 마루와 채색한 벽이
있던 신전이 발견되었고, 눈을 비취로 만든 여성두상 도기가 발견되어 여신묘라고 불리게 되었습니다.
발굴 과정에서 지하 1m에서 제사를 지냈던 장소나 제단, 벽화, 돌무덤 등이 발견되었습니다.
여신묘 안에는 사람 세 배 크기의 도제의상이 줄지어 있었습니다. 이 상은 신상으로 추측되며,
현재 중국 문화에서는 유래 없던 것이었습니다. 뉘우허량에서 발견된 기념비적인 건축물의 존재나
또 여러 가지 토지와 교역의 증거로 인해 이 시기에 선사시대의 수장국인 왕국이 있었다고 추측됩니다.
여신묘에서는 채도도 발견되었습니다. 부근에서 60개 이상의 고분도 발굴되었고, 이것들은 돌을 짜서
석실을 만들고 그 위에 조약돌을 씌워 무덤을 만들었습니다. 그 내부에서 구슬 등의 유물도
발견되었습니다. 근처의 두 곳의 언덕 위에는 돌무덤이 발견되었고, 그 가까운 곳에서는 석회암을 쌓아
올려 만든 둥근 무덤이나 사각형의 무덤도 있었습니다. 이러한 고분 중에서는 곰이나 용, 거북이의 조각이
발견되었는데 이러한 유물로 홍산 문화에서는 이미 제물을 바쳤다는 지적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양사오 문화 초기 유적에서 발견된 유물에서 알 수 있듯이 홍산 문화의 유적에서도 초기의 풍수의
증거로 여겨지는 것이 발견되고 있습니다. 뉘우허량 유적 등, 홍산 문화의 제사 유적에 볼 수 있는
원형이나 방형은 천단의 우주관이 벌써 존재하고 있었던 것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1980년 초기, 이전에는 역사기록에 없는 그 누구도 몰랐던 여신묘에서 다량의 옥기가 부장품으로
출토되었습니다. 또한 중국의 옥기 전문가들은 이곳에서 옥을 자를 때 쓴 도구를 발견했는데,
당시 그 시대와 동일한 조건에서 실험을 해보니 실제 발굴되는 것과 비슷한 1.5cm 정도의 두께의
옥에 모래나 옥가루를 뿌려가면서 나무 막대기를 돌려서 구멍을 파는데 순수한 작업시간만
31시간이 걸렸습니다.